수요 묵상

Wednesday Meditation

수요경건의 시간을 위한 말씀
경건을 더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성도

설교자: ​강숭희 목사

베드로후서 1:4–7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사는 것입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여 믿음에 덕, 지식, 절제, 인내를 더했다면 이제 여기에 경건을 더 해갑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한 삶입니다. 야고보서 1:27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돌보고,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그분을 경외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경건입니다.

그런데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믿음에 따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방법대로 살아가고자 하면, 재물과 성공 그리고 소유나 자기 욕망의 만족함을 얻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는 세상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으로 인해 불이익과 박해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성경적 가치관과 세계관은 세상의 것과 부딪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은근한 따돌림이나 왕따를 당할 수 있고 핍박이나 모욕, 또 미움과 순교와 같은 어려움과 고통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영적인 무장을 하고 영적 전쟁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 영적인 싸움을 위해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더욱 간절해지고 깊이가 생기면 경건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박해를 받지만 박해를 이겨내고자 기도할 때 온전히 경건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나를 미워하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용서하고 사랑으로 용납하는 것을 훈련받을 기회도 없고, 자신이 지금 얼마나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 주변의 교만한 사람이 있어야, 우리가 인내의 훈련을 받으며 연단되고, 겸손의 소중함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같은 시험의 상황 이 찾아오면, 이것은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하고 원망하고 분노에 사로잡혀 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오히려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훈련의 기회로 삼고, 기도하여 이겨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이때 연단이 되고 경건의 깊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건의 훈련을 이야기합니다.

디모데전서 4:7b-8,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연단을 하여 경건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디모데 전서 4: 8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이 말씀처럼 경건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와 내생에서 범사에 유익함이 있다고 하나님께서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입니다. 이처럼 경건이 참으로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네 자신을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 즉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말씀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지고, 이웃을 사랑으로 돕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경건 즉 하나님 앞에 온전하다는 것은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 안에서 자족하는 마음으로 그 은혜를 누리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유익한 것입니다.

그럼 경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유익함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죽음과 멸망입니다.

베드로후서 2:5–6, ‘5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라고 하여 과거의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예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3:7에서는,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하셔서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이 반드시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심판받는 이유는 유다서1:15b,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는 말씀대로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으로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말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 아니라 대적하는 원수관계에 있는 경건하지 못한 자들에게 소망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소망을 얻은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아 가기 위해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해야 합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 믿음에 경건을 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노력만 가지고는 경건함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경건함에 이를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롬 5: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예수님께서 경건하지 못하여 죽음과 멸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나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경건에 이를 수 있는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신성한 성품에 경건을 더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며 복입니다.

바라기는 날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고자 우리의 믿음에 경건을 더해감으로, 주님의 은혜와 복을 받은 자 답게 우리 주변에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영향력을 주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